홀스또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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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주인공으로 하여 주인공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의 삶에서의 명암을 그려냄과 동시에 인간의 삶의 명암을 함께 대조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
‘낯설게하기’ 기법이 사용되어 말의 시각에서 인간의 부조리, 소유욕 등을 꼬집은 작품
보리스 프로꾸진의 레프 똘스또이: 정치 세계의 《낯설게하기》 원칙 수록

책 속으로
– 세상에는 고상한 노년도, 추잡한 노년도, 그리고 가련한 노년도 있기 마련이다. 고상함과 추잡함이 공존하는 노년도 있다. 거세마의 노년이 바로 그러했다. (P. 17)

– 그는 늙었고 그들은 젊었다. 그는 여위었고 그들은 기름졌다. 그의 삶은 무료했고 그들의 삶은 유쾌했다. 그리하여 점점 더 그는 완전한 타인, 이방인, 그래서 동정할 수조차 없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가야만 했다. 말들은 오롯이 자기애(自己愛)만 지닌다. 다른 말들에 대한 동정은 어쩌다 가끔, 그것도 가죽 털 모습에서 쉬이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말들에게만 느낀다. 그렇지만 늙고 여위어 흉한 몰골이 된 것이 어디 얼룩빼기 거세마의 탓이랴. 그렇지 않으리라. 그러나 말들의 세계에서 그는 유죄였다. 오로지 강하고 젊고 행복한, 그래서 앞날이 창창하고 무심코 준 힘에도 온 근육이 전율하며 말뚝처럼 꼬리가 치솟는 말들만이 무죄인 것이다. (P. 28)

– 내가 본디부터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편이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괜스레 경멸감을 불러일으키는 내 얼룩, 예기치 않게도 묘하게 꼬여버린 나의 불행, 그리고 사육장에서 내가 느꼈던 남들과는 다른 처지,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나는 더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얼룩빼기라는 이유로 나를 함부로 비난하는 사람들의 부당한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모성애, 아니 여자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외적인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P. 46)

– 당시의 나는 나를 특정인의 소유로 부르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연 납득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말(馬)인 나를 두고 나의 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땅, 나의 공기, 나의 물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이상하게 여겨졌다. … 인간들 세계에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는 말들의 중심에는 나의, 내 것의, 나만의 라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온갖 사물과 생명, 대상에 상관없이 이 말들을 갖다 붙인다. 심지어 땅도, 사람도, 말(馬)도 그 대상이 될 지경이다. 그게 그거인 똑같은 물건을 두고도 단 한 사람만이 나만의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약속을 해댄다. 그리고 그들끼리 정한 이와 같은 내기에서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을 가장 많이 선점한 사람을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들 한다. 예전엔 나도 어떻게든 좋게좋게 해석해 보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역시 부당한 듯하다. (P. 48~49)

– 그러나 이상한 점은 내가 자기의 말이 아닌 마구간 대장 소유의 말이라고 여기는 까닭에 나의 보조 또한 그들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 이러한 모든 차이는 내가 얼룩빼기인 탓에 비롯되었으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내가 백작이 아닌 마구간 관리 대장 소유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내일의 삶이 주어진다면 마구간 관리 대장이 생각하는 그 소유권으로 인해 내 인생에 어떤 중요한 파장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들려주도록 하겠다. (P. 52~53)

– 비록 그가 나의 파멸을 초래한 장본인이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사랑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으나, 나는 그래서 그가 좋았고 지금도 좋아한다. 잘생기고, 행복하고, 부유했기에 그 누구도 사랑할 필요가 없었던 점이 나는 좋았다. 그대들도 말들만이 느끼는 이와 같은 고상한 감정을 이해하리라. 그의 냉정함과 무정함이 그에게 의존하는 나의 마음과 결합하면서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어떤 특별한 힘을 자아냈다. (P. 57-58)

– 주인은 자신의 말(馬)이 아닌 다른 말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자, 아예 들을 생각도 않고 딴청을 피우다 자기의 말 떼만을 계속 쳐다보았다. 불현듯 허망하고 무력한 노쇠마의 울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무색해 하며 울음을 삼킬 듯하면서도 멈추질 못하는 얼룩빼기 홀스또메르의 울음소리였다. 그러나 손님도, 주인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홀스또메르가 이제는 늙어 축 처져버린 노인이 자신이 사랑했던 옛 주인, 한때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부유했던 세르뿌홉스꼬이 공작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P. 71)

출판사 서평
처음 접하는 상황이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 우리는 데자뷔(d?j? vu) 현상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와는 반대로 평소 익숙하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데 이런 현상을 자메뷰(jamais vu), 혹은 미시감이 느껴진다고 표현하기도 하며 문학 안에서는 이를 ‘낯설게하기’라고 한다.
‘낯설게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주요한 문학적 기법으로 빅또르 쉬끌롭스끼가 주장했다. 익숙한 대상을 낯선 시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같은 대상이더라도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표현하는 방법이다. 똘스또이는의 『홀스또메르』는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해 평범할 수도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똘스또이는 말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늙은 말의 시점으로 인간 세상을 묘사한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부터 죽음에 이르는 삶의 마지막 모습까지 우리는 말의 이야기를 듣는 새로운 느낌을 받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간사와 이어진다. 우리 인간이 청년, 중년, 노년을 지나며 겪는 삶의 기쁨과 슬픔, 자신감 그리고 외로움을 홀스또메르의 말을 통해서 듣고 있으면, 이것은 마치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똘스또이가 주인공 홀스또메르를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메시지는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비판이다. 화려했던 젊은 시절의 장교는 비참한 말로를 보내는 노인이 되어 홀스또메르와 재회하게 되지만 그는 홀스또메르를 알아보지 못한다. 홀스또메르 또한 전성기의 위치에서 추락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홀스또메르의 죽음, 이어지는 장교의 죽음에서 삶에 대한 쓸쓸함과 외로움, 덧없음이 느껴진다. 이는 『홀스또메르』에서 사용된 ‘낯설게하기’ 기법이 독자로 하여금 새롭고 낯선 시각과 극대화된 감정으로 인간사를 보게 하고 똘스또이의 사유를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다.
똘스또이는 인간사의 부조리와 소유욕을 홀스또메르의 시선을 통해 증명해냈다. 그의 오랜 이야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빗대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홀스또메르가 바라본 인간사의 명암이 지금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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