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
허무주의, 무신론을 쫓는 러시아 인텔리들을 향한 작가의 비판
『악령들』은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잡지 『러시아 소식』에 연재되었다. 『악령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 형제들』만큼이나 작품의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69년 당시 해외에 머물던 도스토옙스키는 네차예프 사건을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악령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작가는 무정부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는 자신이 그간 가지고 있던 신과 종교의 문제를 함께 연결시키며 작품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켰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젊은이들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악령들』을 무겁기만 한 정치소설, 사상소설이 아닌 심리ㆍ범죄드라마, 미스터리 사회소설로 이끌었다. 3부로 구성된 『악령들』을 통해 도스토옙스키가 정치적, 철학적, 윤리적, 종교적 문제의식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가볍게 읽는 도스토옙스키의 5대 걸작선 시리즈는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작가의 5대 장편 소설인 『죄와 벌』, 『백치』, 『악령들』, 『미성년』,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독자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시리즈이다. 완역본은 많은 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출간되었고 작품의 방대한 분량으로 일반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워하기에 엄선된 문장으로 이해를 도우며 접근성을 높이는 축약본 시리즈를 기획했다.
저자(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군의관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여의고 난 후, 16살 때 페테르부르크의 공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학교에서 문학모임을 만들고 번역 작업을 하면서 첫 번째 소설인 『가난한 사람들』(1845)을 썼다. 1849년 러시아 정교를 비판한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낸 편지』를 낭독한 이유로 체포되었으며 군사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총살직전 니콜라이 1세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에서 유배생활을 보냈다. 4년간의 감옥생활과 4년간의 유형생활 후,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1861)에 그간의 체험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룰렛 도박에 빠져 생긴 빚과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으로 인한 빚,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어 생활고에 시달렸다. 출판사와의 노예 계약 때문에 소설 『죄와 벌』(1866)의 저작권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지만,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를 만나 기일안에 『도박자』(1866)을 완성해 저작권을 지키게 된다. 이후 그는 안나와 결혼해 해외로 떠나 『백치』(1869)의 작업을 마쳤다. 1870년부터 1880년까지 그는 『악령』(1871)과 『미성년』(1875),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79)을 출간하며 더없는 성공을 거뒀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도스토옙스키는 유산문제로 인한 여동생과의 다툼으로 병이 악화되었고, 1881년 1월 사망했다.
출판사 서평
1861년 러시아 농노해방 이후 혼돈의 러시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러시아 인텔리들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악령들』을 통해 러시아 인텔리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여전히 1840년대식의 낭만주의, 서구주의의 영향 하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비판하는 1860년대 세대들의 무신론, 허무주의, 사회주의 사상은 1840년대 사상의 대안이 되지 못한 채 러시아라는 트로이카를 더욱 더 혼돈 속으로 몰고 갈 뿐이다. 신을 부정하고 신을 품은 러시아 민중과 유리된 러시아 인텔리들은 바로 ‘악령 들린 돼지 떼’로서 러시아의 미래를 결코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음을 작가는 『악령들』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자세히 볼 수 없고 그 실체를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는 보려고조차 하지 않고 질주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 혹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언지 모를 실체의 질주에 동참하며 앞만 보고 내달린다. 이처럼 우리는 실체 없는 무언가의 질주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이 급변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질주를 외면하거나 혹은 질주하는 모든 것과 함께 질주해야만 하는가? 지금은 질주를 잠시 멈추어야 할 때이다. 질주를 멈추어서 질주하는 실체를 파악하고 질주의 의미를 찾아야 할 때이다. 질주하는 실체가 ‘악령 들린 돼지 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역자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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