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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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는 도스토옙스키 5대 걸작선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5대 장편은 모든 작품이 필독서일 정도로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널리 알려진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 형제들〉만큼이나 사랑받는 작품이 〈백치〉이다. 무엇보다도 작가인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소설이다. 작가는 백치로 표현되고 있는 므이쉬킨 공작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묘사한다.

가장 순수하고 성스러운 영혼을 가진 레프 므이쉬킨 공작은 전세계의 고통을 홀로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가장 종교적 인물 중 하나이다. 때묻지 않은 므이쉬킨 공작과 더불어 지나친 열정의 소유자 파르푠 로고진과 고통 받는 여성상, 아름다우면서 비극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 등의 인물들을 통해 도스토옙스키의 또하나의 걸작이 완성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 속에 자신이 사형 선고를 언도 받았던 당시의 처절한 감정을 매우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유명한 명언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가 언급되었다는 점에서도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가장 많이 영화, 드라마, 발레, 연극 등으로 무대화된 작품,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현재의 테마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을 쉬운 필체로 감상해 보기 바란다.

저자(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이자 사상가, 인문주의자이다. 19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공병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1년 장교가 되었고 1843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였으며 1844년 퇴역하였다.
1845년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문학 잡지 ‘조국 수기’에 출간되었으며,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도 관료들의 삶에 관한 여러 중편 소설들이 출간된다.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사회 공동체 내부의 사회적 변화가능성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주의 이념을 연구하는 문학모임에 참여한다. 1849년 12월 21일 동 문학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선고가 변경되어 4년간 시베리아 유형을 떠난다. 1856년 러시아로 돌아왔다. 유배 생활 후 발간된 초기 작품들은 ‘아저씨의 꿈’과 ‘스체판치코보 마을’ 이다.
1860년부터 도스토옙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거주하였고 1861년 형과 월간지 ‘시대’를 창간하여 시베리아에서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상처받은 사람들’과 ‘죽음의 집으로부터의 수기’를 발표한다. 하지만 1863년 잡지는 출간 금지를 당하게 된다.
이후 작가는 국외에서 장편소설 ‘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1871~1872)을 발표하였다. 1873년부터 잡지 ‘시민’의 편집장을 지내며 ‘시민’ 잡지에 ‘작가 일기’를 발표한다. 1875년에 장편소설 ‘미성년’을 게재하였고, 1876~1878년에는 ‘작가 일기’를 별도의 책으로 발표한다. 1979년에는 장편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출간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1881년 1월 28일 사망하였으며, 알렉산드로-넵스카야 대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은 인간의 심연을 심도 있게 풀어내고 있으며, 쉽게 볼 수 없는 심리 분석의 표본들이다.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동안 인간 내부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란 단순히 어떤 영향력에 대해 반응하기만 하는 ‘피아노 건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알며, 그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선택을 하고 그러한 선택을 통해 성장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된 사상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란다… 아름다움은 이상이지…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존재는 바로 그리스도 한 분이 유일하단다…”

위의 내용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조카 소피야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그리고 소설 〈백치〉의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은 도스토옙스키가 그토록 그리고 싶어했던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인물이었다. 대체 도스토옙스키가 그리던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존재는 소설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백치〉는 〈죄와 벌〉,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과 더불어 도스토옙스키의 5대 장편 중 하나로,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유일하게 해외에서 구상과 집필이 시작되고 완성되었다. 구상은 186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했고 1868년 1월 〈러시아 통보〉지에 연재를 시작했으며 1869년 1월에 작품을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의 여정은 제네바로부터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시작된다. 므이쉬킨 공작의 ‘그리스도 형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나타난다. 로고진은 기차에서 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작, 당신은 천상 유로지비(바보 성자)인데, 신은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하죠.”

해외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어디서 어떻게 살 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그는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성경에서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언뜻언뜻 떠오른다.

“…제가 완전히 어린아이와 다름없으며 키와 얼굴만 성인이지 마음, 성격, 지능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고 제가 60살까지 살아도 계속 어린아이처럼 지낼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저는 왠지 모르게 성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힘들었고 제가 그들로부터 해방되어 제 친구들(아이들)에게 달려갈 수 있다면 뛸 듯이 기뻤는데 그건 제가 어린 아이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끌렸기 때문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므이쉬킨은 스위스에서의 추억을 되짚으며 아이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들을 사랑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렇듯 므이쉬킨 공작은 인간의 가장 선한 면을 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그는 ‘백치에 가까운 상태’가 될 정도로 심각한 병을 앓았는데 여기서 ‘백치’라는 단어는 축복받은 자,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밖에 소설 곳곳에 므이쉬킨 공작이라는 인물 속에는 ‘돈키호테’의 모습, 아글라야가 언급하듯 푸쉬킨의 ‘가난한 기사’의 모습도 들어가 있다.

소설의 주된 사건은 통속적인 로맨스 스캔들이다. 절세 미인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내연 관계, 정략 결혼, 삼각관계, 사각관계, 도주, 싸움으로 치닫다가 결국은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여자 주인공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는 순진한 어린 시절토츠키라는 대부호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해 그의 정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츠키는 예판친 장군의 여식에게 장가를 들고 싶어한다.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는 이렇게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리려는 토츠키에게 분노하고 그의 결혼을 훼방 놓는다고 협박한다. 이에 예판친 장군과 토츠키는 그녀를 달래려 그녀에게 지참금을 주며 가브릴라(가냐)와 결혼하라고 회유한다. 그녀는 이들을 비웃으며 자신에게 반한 로고진과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므이쉬킨 공작을 잊지 못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결국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해 분노한 로고진은 그녀를 죽이고 므이쉬킨 공작은 이전보다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스위스로 또다시 요양을 간다.

그리스도의 닮은꼴이라는 므이쉬킨은 실제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만난 사람들은 선량함, 고결함, 이해심이라는 한 줄기의 빛을 받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에 자신의 삶의 흔적을 남겨두는 경우가 많았다. 〈백치〉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아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사면되었던 잔인한 ‘사형극’ 경험을 므이쉬킨 공작의 입을 통해 생생히 들려준다. ‘사형당할 뻔했던 아찔한 경험담’을 실제로는 쓸 수가 없어 소설 속에서라도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토로한 느낌이다.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이 1세는 정치범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사형을 선고했다가 형 집행 직전에 사형을 취소하는 ‘사형극’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치범으로써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분쯤 후에 사면령이 내려졌고, 다른 형벌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사형선고와 사면령 사이 그 20분 동안 몇 분 후면 죽을 것이란 확신을 했지요. (중략) 신부님이 십자가를 들고 모든 죄수들 사이를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이 5분도 채 안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 5분이 그에게는 영겁의 시간 같았으며 너무나 큰 자산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5분이란 시간이 너무 긴 시간처럼 느껴져 이 순간이 마지막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것입니다. 그는 동료들과 이별할 시간 2분, 자기 자신에 대해 마지막으로 돌아볼 시간 2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남겨놓기 위해 시간을 나누어 놓았습니다. (중략) 그는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데, 3분 후면 다른 존재 혹은 다른 인물인지 무엇인지가 될 것이다. 무엇이 될 것인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소설의 대표작으로 만들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좋아했는데 바젤 미술관을 방문해서 그림을 직접 감상한 후 소설에 등장시킨다.

“그래 이건… 한스 홀바인의 복제품이군.” 공작이 말했다. “내가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훌륭한 복제품 같네. 해외에서 이 작품을 봤는데 잊을 수가 없더군.”

로고진의 음침한 집에서 므이쉬킨 공작은 한스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의 모작을 보고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이 그림은 소설의 가장 핵심적 키워드인 믿음과 불신의 테마와 연관되어 있다. 만약 한스 홀바인의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구세주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 이 그림을 보면 신앙이 사라지겠군!” “사라지지.” 갑자기 로고진이 예기치 못하게 확신했다.…

이밖에도 〈백치〉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할 만한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소설에 비해 희미하고 불확실한 느낌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도스토옙스키가 이 작품을 정말 사랑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듯 도스토옙스키는 〈백치〉를 해외에서 모두 구상하고 집필하였으며, 두 번째 부인 안나와 결혼하자마자 해외로 떠나서 쓰게 된 작품이다. 집필 기간 동안 그는 안나와의 사이에서 딸 소냐를 낳았으나 소냐는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 시기는 그가 인생에서 큰 슬픔을 경험한 때이기도 하다.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딸을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다른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피렌체에서 〈백치〉의 작업을 모두 마쳤다. 〈백치〉 이후에는 도스토옙스키 부부는 독일 드레스덴으로 이사해 둘째 딸 류바를 낳고 그곳에서 소설 〈악령〉을 쓰기 시작해 러시아에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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