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문호 도스또옙스끼의 장편 소설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준비된 ‘전채’요리
도스또옙스끼는 장편 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중단편은 이러한 작가의 명성 탓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 책에 실린 도스또옙스끼의 중단편들은 대문호의 장편들을 읽기 전 미리 맛보는 전채 요리와 같다. 장편 소설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인물 형상, 자연에 대한 시적인 묘사와 감상, 희극적인 에피소드 등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읽을거리를 접하게 된다. 도스또옙스끼의 심오한 사상 혹은 무거운 주제 등에 주눅이 든 독자라면 이 책에 실린 4편의 중단편을 통해 작가의 색다른 ‘가벼움’과 ‘유머코드’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뿌쉬낀하우스에서는 다양한 러시아 문학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러시아 문학전집 ’뿌쉬낀의 서재’를 기획하였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도스또옙스끼의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은 도스또옙스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책으로 작가의 숨겨진 중단편 소설들을 엮은 선집이다.
책 속으로
– 하지만 애정은 특별한 감정이고 질투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애정이다. (P. 49)
– 이반 뻬뜨로비치! 내일 자네는 새로운 덧신을 받게 될 걸세. 난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 뭔가 얻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거든. 또한 거리를 다니면서 잡다한 것들을 모으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예브게니 니꼴라이치가 자기 할아버지 일 때문에 심비르스끄로 가는데 나에게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다네. 자네도 같이 가지 않겠나? (P. 119)
– 그런 행복한 얼굴들이 있다. 그녀의 곁에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고 자유롭고 따스해진다. 하지만 정열과 생기를 간직한 슬픔에 젖은 그녀의 커다란 눈은 매순간 해롭고 무시무시한 어떤 것을 두려워하며 수줍고 불안하게 뭔가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이런 어색한 수줍음과 우수는 이탈리아 성모 마리아의 밝은 얼굴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조용하고 온순한 인상을 가려 버려서 그녀를 바라보면 이따금 독특하고 본원적인 슬픔 때문에 우울해지곤 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야위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깨끗하고 단정한 윤곽이 만들어 낸 흠 없는 아름다움과 숨겨진 공허한 애수를 담은 엄격한 우울이 드러났다. 때문에 그녀의 얼굴에는 아이와 같은 첫인상이 빛났다. 그 인상은 남을 잘 믿는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이미지다. 아니 어쩌면 순수한 행복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녀의 조용하고 수줍어하며 흔들리는 미소에 언제나 본능적으로 이끌려서 놀라곤 했다. (P. 135)
–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나요……. 큰 소리로…… 모든 부인들 앞에서…… 그렇게 저속한…… 거짓을…… 말하다니?! 모든 남성들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당신에게…… 그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은 어른이고 결혼도 했잖아요!” (P. 155)
– 나는 기쁨에 겨워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그녀의 스카프를 들고 거기에 입 맞추었다. 얼마 동안 난 미친 사람 같았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팔꿈치를 괴고서 풀밭 위에 누워 아무런 의식도, 움직임도 없이 주변의 산과 언덕, 알록달록한 밭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언덕과 마을들은 마치 흘러가는 점들처럼 빛으로 충만했고 푸른 숲은 뜨거워진 하늘 위로 보일 듯 말 듯 마치 연기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장엄한 광경이 만들어 내는 달콤한 평화가 나의 흥분된 마음을 점점 더 어루만지고 차분하게 해주었다. 나는 홀가분해졌고 더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하지만 내 영혼은 어떤 환영과 예감 때문에 어두워져서 달콤하면서도 괴로웠다. 기다리면서 조금 인내해 왔던 나의 놀란 가슴은 뭔가를 수줍고도 기쁘게 깨달은 것 같았다. 갑자기 내 가슴은 뭔가에 찔린 것처럼 흔들리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달콤한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풀잎처럼 온몸을 떨면서 내 본성이 알지 못하는 불분명한 환영과 내 마음이 처음으로 인식하고 발견한 것에 자유로이 몸을 맡겼다……. 나의 첫 유년시절은 이 순간과 함께 끝이 났다. (P. 189)
– 문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리자 율리안 마스따꼬비치가 놀라서 곧바로 자신의 건장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붉은머리 소년은 그보다 더 놀라서 소녀를 놔두고 벽에 붙어서 조용히 거실에서 나가 식당으로 갔다. 율리안 마스따꼬비치도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그는 거울속에서 가재처럼 빨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스스로 당혹스러워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열정과 조바심에 화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가 처음에 손가락으로 계산한 것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완고함과 교만에도 불구하고 소녀를 지켜보다가 고무되어서 아이처럼 행동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상대에게 접근해 보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5년이 지나야만 그 상대가 진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P.201~202)
출판사 서평
도스또옙스끼는 장편 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한 초기 중단편들에 대해서는 작품의 예술성을 논하기조차 꺼리는 것이 비평계의 관례처럼 굳어져 왔다. 사실 데뷔작 이후 작가는 극도의 빈곤 속에서 창작의 위기를 겪으며 글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속에서 작가는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소설을 과감하게 실험했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의 주인공은 의처증이 있는 남편이다. 그는 고상하고 교양있는 신사인 척하지만 사실 그는 질투심 많은 소심한 남자일 뿐이다. 작가는 정부를 기다리는 젊은이와의 만남, 남의 집 침대 밑에 숨게 된 상황 등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들을 통해 질투, 불륜이라는 소재를 풍자하고 있다.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은 두 주인공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성공 이후 『분신』과 『쁘로하르친씨』에 대한 혹평 이후 작가는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을 씀으로써 다시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편지 형식의 소설을 통한 성공을 시도했다. 이름에서 나타나듯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분신 같은 존재다. 편지는 주인공들이 서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보이는 의사소통의 부재는 아이러니하며 이는 현대인들에게도 보이는 모습이다. 도스또옙스끼는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편지 아홉 통만으로 풀어냈으며, 이러한 구성과 결말에서 우리는 진지한 듯 우스꽝스러운 작가의 유머코드를 느낄 수 있다.
「꼬마 영웅」은 시골의 전원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꼬마 영웅’의 어른다운 배려심과 사랑하는 여인을 끝까지 지키려는 중세 기사다운 풍모, 그의 풋풋한 사랑이 묻어나 있다. 작가는 모스끄바 근교의 영지에서 가족들과 전원생활을 누린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들을 「꼬마 영웅」에 드러냈다.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배경 때문에 너무 일찍 어른들의 사랑을 알아버린 꼬마 영웅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파티와 결혼식」에서 돈에 대한 욕심으로 어린 소녀에게 흑심을 품은 율리안 마스따꼬비치, 아이들을 부모의 부에 따라 차별하는 상인 부부의 모습은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배경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이름모를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이 상황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율리안 마스따꼬비치의 탐욕과 속물근성은 도스또옙스끼 소설들에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작가의 후기 소설에 등장하는 ‘탐욕스런 비열한’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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