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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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똘스또이의 문학 작품과 일기, 서간, 기고문, 논집을 모두 아우르는 「레프 똘스또이 전집」의 보급판 「똘스또이 클래식」 시리즈의 두 번째 책『결혼의 행복』. 이 작품은 1859년에 쓰여진 작품으로 결혼을 전후한 남녀 관계의 변모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열일곱 살의 마샤가 한참 연상의 세르게이를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2부에서는 결혼 후 두 사람이 갈등을 겪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글) 레프 똘스또이
저자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는 1828년 모스끄바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거리에 있는 야스나야 뽈랴나에서 똘스또이 백작 가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큰 고모와 후견인의 보살핌 속에 자라났다.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중퇴하였다. 23세가 되던 1851년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시작하였고 이때 처녀작 「유년시절」을 쓰기 시작하여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6년에는 크림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경험을 토대로 쓴 「세바스또뽈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한편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후 「까자끄 인」(1863), 「전쟁과 평화」(1869), 「안나 까레니나」(1877) 등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대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사상의 전환을 맞이하여 「교의신학 비판」(1880), 「참회록」(1882)을 발표하는 등 기존의 순수예술에서 점차 벗어나 도덕적인 신념을 강조하고 자신만의 종교를 설파하였는데, 이로 인해 1901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여 발생한 부인 소피야와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똘스또이는 1910년 끝내 노구의 몸을 이끌고 가출하였다가 아스따뽀보 기차역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책 속으로
그러나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가식적으로 치장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후에 나는 의도적인 몸짓을 하거나 과하게 머리를 손질하지 않았고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p. 31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무엇인가를 물어볼 때, 그는 눈빛으로 이미 원하는 것을 내 안에서 끌어냈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감정은 순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과 감정이 어느 순간 내 것인 듯 되어 버렸고, 그렇게 내 삶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p. 33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사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행복이라고 말해 왔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여겨졌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단순히 생각의 차원을 넘어 나의 신념이 되어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저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pp. 34-35

이미 수탉이 세 번이나 울었고, 그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새벽노을이 물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는 특별한 말 없이 평소처럼 인사하고 떠났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부터 그는 내 남자이고, 절대로 그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p. 54

이제야 비로소 그가 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우리 둘이 함께라면 그렇게 평생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국 여행이나 화려한 삶은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조용히 시골 마을에서 가족들과 함께 서로 사랑하고, 돕고 헌신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pp. 62-63

“내가 당신에게 뭘 줄 수 있을까요? 고작 사랑이나 줄 수 있겠죠.”
“그것으로 부족할까요?” 내가 그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부족하죠, 당신에게는 부족하죠.”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아직 젊고 아름다워요. 우리가 함께 지낼 날들을 생각하면 행복해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요. 살면서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깨달았어요. 우선 나는 이곳 외딴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고 싶어요. 이 사람들은 그런 선의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감동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노동이에요. 노동은 아주 유익하니까요. 그다음으로는 적당한 휴식이나 자연, 책, 음악,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겠죠.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고 그 이상은 기대하지도 않아요. 게다가 당신이 좋은 친구이자 아내가 되어 준다면 더이상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죠.” pp. 76-77

결혼 전에는 고된 노동을 하고 희생을 하면서라도 의무를 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를 사랑하고 또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이 싹텄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즐거웠으며 세상의 일은 잊고 지냈다. p. 89

예전에 비해 나에 대한 그의 사랑도 식지 않았고, 그의 사랑을 받으면서 느끼는 내 행복감도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이 더는 커지지 않고 멈춘 것은 사실이었다. 사랑 외에 불안한 감정이 내 마음속에 슬그머니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를 사랑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맛본 이후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삶이었다. p. 99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나는 매일, 매시간 새로운 것을 원하는데, 그는 안주하기를 원하고, 나한테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 조금 다르게 사는 것도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러면 나를 도시로 데려갈 필요도 없고, 자신을 억누르거나 바꾸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나처럼 살면 되는데. 나한테는 그렇게 살라고 충고하면서, 정작 본인은 그렇지 못하다니까. 바로 이게 문제야!’라고 생각했다. p. 103

이날부터 우리의 관계도,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우리 둘이 있는 게 예전만큼 좋지 않았다. 서로에게 건드리면 안 되는 문제가 있었고, 둘이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는 게 더 수월했다. 시골 생활이나 무도회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둥지둥 시선을 피했다. 무엇 때문에 우리 사이가 멀어진 것인지 둘 다 알고 있는 듯했고, 그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pp. 128-129

우리 사이에는 각자의 삶을 살자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는 내가 필요하지 않고, 나도 그가 나와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들에 몰두했다. 나도 예전처럼 그를 슬프게 하거나 모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무미건조하게 시간을 보냈다. 우리를 화해시켜 주기에는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렸다. p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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