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뜨」 외 「세 죽음」, 「지주의 아침」
1850년대 대표작 세 편을 모은 단편집
레프 똘스또이의 문학 작품과 일기, 서간, 기고문, 논집을 모두 아우르는 「레프 똘스또이 전집」의 보급판 「똘스또이 클래식」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이 책에는 똘스또이가 1856~57년에 쓴 단편 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세 죽음」은 여지주, 마부, 나무의 죽음에 대한 독특한 삼부작으로 인간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그리고 있다. 「알베르뜨」는 똘스또이가 천재적인 음악가 알베르뜨를 통해 현실과 대비되는 예술, 예술 속에 내재한 삶의 이상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주의 아침」은 똘스또이의 자전적 소설로 비참한 농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을 자퇴하고 자신의 영지로 가서 선행을 실천하는 네흘류도프 공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는 각 단편에 대한 짧은 해설뿐만 아니라 「알베르뜨」, 「지주의 아침」에 대한 논문이 수록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출판사 서평
「세 죽음」 해설
「세 죽음」은 ‘인간의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이상’과 ‘행복, 아름다움, 모든 세계와의 조화를 품고 있는 자연의 이상’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똘스또이에게 있어 인간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였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인간의 최종적 가치를 평가했다. 그는 「유년시절」에서 유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녀는 이 생애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일을 했다. 아무런 안타까움이나 공포 없이 생을 마감한 것이다.”
「세 죽음」은 여지주, 마부, 나무의 죽음에 대한 독특한 삼부작이다. 언뜻 보면 이 죽음들은 거의 상관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안나 까레니나」에 대해서 똘스또이가 언급한 대로, “상관 관계는 스토리나 인물들 간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 관계 속에 있다.”
고모뻘인 알렉산드라 똘스따야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나의 구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세 존재, 즉 여지주, 농부 그리고 나무가 죽습니다. 여지주는 추악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평생 동안 거짓으로 살았고, 죽음 앞에서조차 거짓을 일삼기 때문이죠. 그녀가 이해하는 그리스도교는 그녀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살고자 할 때 왜 죽어야 할까요? 그녀는 미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약속을 머릿속으로 이성적으로는 믿지만, 그녀의 모든 존재, 즉 영혼과 육체는 모두 그것을 거부하지요. 그것을 받아들일 내적 공간이 없으며, 거짓 종교가 주는 것 이외의 다른 위안을 찾지 못하지요. 따라서 그녀는 추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부는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리스도교의 예식을 따르고 있을지라도 그의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닙니다. 그의 종교는 그가 함께 살았던 자연입니다. 그는 직접 나무를 베고, 씨를 뿌리고 거두며, 숫양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서 양들이 태어났고, 아이들도 태어났으며, 노인들은 죽어갔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여지주처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랬기에 목전에 있는 죽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나무는 평온하고, 솔직하고, 아름답게 죽어갑니다. 왜 아름다운가요? 왜냐하면 나무의 죽음에는 거짓도, 변덕도, 두려움도, 아쉬움도 없기 때문입니다.”
「알베르뜨」 해설
똘스또이는 1850년대 중반 현실에 대해 무거운 감정들을 느꼈고, 이로 인해 순수예술 쪽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예술 속에서 탈출구를 찾고자 한 것이다: “구원은 모두 복된 것이다. 도덕적 세계, 예술과 시의 세계, 그리고 좋아하는 것의 세계는 모두 복되다.”
이 시기의 예술은 똘스또이에게 있어 전쟁의 도구도 아니었고 계몽의 무기도 아니었다. 삶으로부터, 현실의 부조화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수단이었다. 이때에 똘스또이는 예술 속에 내재한 이 삶의 이상을 표현해 낼 수 있었다. 1857년 그는 단편 「알베르뜨」를 냈는데, 그의 작품 중 가장 보기 드물게 작품 속에서 미래에는 부정하게 될 모든 것들을 긍정하는 작품이다.
「알베르뜨」는 명백히 낭만주의적 대비를 기반으로 한다. 즉 현실적이고 일상적 관점에서 볼 때 무가치하고 불쌍한 한 인간과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사람’들 중 ‘위대한 음악 천재’인 한 인간이 대비되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집필 과정 중 몇 번 바뀌는데(‘가망 없는 인간’, ‘상처받은 인간’, ‘사망자’), 이는 작가 자신과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공식의 세 차례 반복은 ‘행복한 사람은 옳다’는 똘스또이의 평가를 담고 있다. 상상 속에서, 즉 ‘몽상의 자유롭고 아름다운 영역’에서는 알베르뜨 역시 행복하다. 하지만 두 세계, 즉 ‘꿈, 영감, 예술’과 ‘현실, 일상, 산문적인 삶’은 양립 불가능하며 적대적이다. ‘몽상의 영역’에서의 아름다움은 이와 명백히 대비되는 현실로 인해 가리워진다. 일련의 평범한 군중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베르뜨의 영감으로 가득 찬 아름다움은 더러운 옷을 입고 불쌍한 형상을 한 그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영롱하게 빛난다.
단편 「알베르뜨」만큼이나 똘스또이 자신에게 운명지워진 예술에의 길을 명백히 드러내는 작품은 없다. 그는 그 어디에도, 그 어느 때에도 ‘선택받은 자’를 평범한 사람들과 대비시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알베르뜨」의 결과로 인해 똘스또이는 문체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반낭만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즉 이후 똘스또이의 작품에서 인간의 행위에 있어 평범하지 않고 예외적인 모든 것은 허위, 위조, 수치 등으로 묘사되기 시작했고, 여기에서 촉발된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한 아름다움만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모든 결함을 담지한 음악가’ 「알베르뜨」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지주의 아침」 해설
본 단편은 잡지 1856년 월간지 『조국수기』(Отечественные записки) 12호에 발표되었다.
단편은 명백히 자서전적 성격을 띠며, 젊은 똘스또이의 가장 원대한 구상인 「러시아 지주의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러시아 지주의 이야기」 집필은 5년간 진행되었다. 소설에 대한 첫 언급은 똘스또이가 1852년 5월에서 7월에 쓴 일기에 나타난다. 그해 8월 3일 똘스또이는 생각해 둔 작품 구상에 대해 ‘러시아 통치 제도의 해악을 서술하려 한다’라고 정의한다. 똘스또이는 까프까즈에 거주하면서 소설을 쓰는 것이 농민의 생활 모습을 서술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염려하지만 이런 망설임은 주요한 큰 목적 앞에 부차적인 것이 된다. 똘스또이는 1852년 10월 19일 일기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소설은 행복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소설이 완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유익하고 선량한 책으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멈춤 없이 계속 쓰고 또 써 나가야 하겠다.’
1852년 12월 5일 레프 똘스또이는 친형인 세르게이 똘스또이에게 썼으나 보내지는 않은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어 가고 있다.
‘난 이 소설을 ‘책’이라고 부르고 있어, 왜냐하면 사람은 삶에서 길지 않더라도 유익한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써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야.’
그리고 닷새 후 다시 편지에서 형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생각에 새롭고, 진지하며 유익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나는 이 일에 많은 시간과 내 모든 능력을 써 보려고 해.’
저술 과정에서 작품의 주요한 아이디어가 더욱더 명료해진다. 똘스또이는 ‘독자가 아닌 저자를 위한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소설 전체에서 나를 이끌 주된 느낌은 시골 지주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배경이 수도 모스끄바든, 지방이든, 까프까즈든지 간에 모두 이런 감성, 즉 삶에 대한 향수가 내재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서술하고 싶은 시골 생활의 매력은 평온함도, 목가적인 아름다움도 아닌, 바로 그 시골 생활이 나타내는 직접적 목적인 자신의 삶을 선행에 바치는 것, 그리고 시골 생활의 소박함과 명료함에 있다.’
작품의 주요한 사상은 행복이 선행(덕행)이라는 것이다.
소설 집필은 종종 오래 중단되곤 했으나, 똘스또이가 소설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음을 작가의 일기와 메모, 노트에서 알 수 있다.
1856년 11월 11일에 이미 뻬쩨르부르그에서 작품의 내용을 줄이고 재수정하며 집필의 마무리 작업을 시작한다. 11월 26일에는 「지주의 아침」이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언급한다. 11월 29일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드디어 「지주의 아침」을 끝냈고 끄라옙스끼에게 내가 직접 들고 갔지…… 두드이쉬낀과 곤차로프는 「지주의 아침」을 슬쩍 칭찬했어.’
똘스또이의 새로운 작품은 자유주의적 비평에서는 냉대받았다. 안넨꼬프는 「지주의 아침」을 ‘지극히 평작’이라고 일컬었다. 1857년 1월 3일 보뜨낀은 뚜르게네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지주의 아침」은 비록 일부 농부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좋긴 하지만 감흥을 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말했다.
뚜르게네프는 「지주의 아침」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1857년 1월 13일 그는 드루쥐닌에게 쓰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스토리의 주요 정신적(예술성은 논외로 하고) 감흥을 말하자면, 지주가 전혀 사심 없이 솔직하게 농노와 가까워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농노제가 계속되는 한 지주와 농노 간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할 가망은 없다는 점이며, 이에 대한 인상을 올바르게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야.’
뚜르게네프는 또한 이름하여 「지주의 아침」에서 똘스또이의 글, 이야기, 캐릭터 묘사 솜씨가 경지에 올랐다고 평했다. 1857년 『동시대인』(Современник) 1호지에서 ‘잡지들에 대한 평’(Заметки о журналах) 기사에서 체르느이?스끼는 「지주의 아침」을 평했다. 그는 이야기의 주요 장점으로 ‘천성에 대한 충실함’을 들었다. 체르느이?스끼는 똘스또이가 뛰어난 솜씨로 시골 사람들의 삶의 외견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시골 사람들의 사물에 대한 시각을 재현하고 있으며, 그가 농민들의 오막살이를 마치 자기 집 또는 까프까즈 병사의 야전 천막처럼 여기는 듯했다고 말했다. 체르느이?스끼는 또한 ‘만약 우리가 작품에서 훌륭한 농부들과 올바르고 시적인 장면들을 모두 언급하고자 한다면 너무나 긴 목록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주의 아침」의 세부 내용의 대부분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작품 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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