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중의 고전, 레프 똘스또이의 작품을 가볍게 읽는다!
『안나 까레니나』는 《안나 까레니나》, 《부활》, 《전쟁과 평화》 등 레프 똘스또이의 작품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세 편의 소설을 부담 없이 읽어볼 수 있도록 구성한 「가볍게 읽는 레프 똘스또이 3대 걸작선」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사랑과 결혼, 가족,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문제 및 시대정신에 대한 똘스또이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안나 까레니나》를 만나볼 수 있다. 당대의 사회상과 더불어 똘스또이 사상의 대전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책 속으로
안나는 계단 옆을 지날 때 마침 등불 옆에 서있던 방문객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브론스끼였다. 안나는 이상한 만족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외투도 벗지 않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던 참이었다. 안나가 계단 중간까지 갔을 때 브론스끼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고는 놀람과 동시에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하고는 옆을 지나갔다. 뒤에서 들어오라는 오블론스끼의 목소리와 이를 사양하는 브론스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나가 돌아왔을 때 브론스끼는 이미 가고 없었다.
p.46
안나는 끼찌가 상상했던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지 않고 단순해 보이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절제된 검은 색상의 드레스는 상아로 빚은 듯한 그녀의 풍만한 어깨와 가슴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제서야 끼찌는 비로소 그녀가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을 필요가 없으며 안나의 매력은 화장이나 옷치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러나 보이는 것은 오직 생동하는 안나 자신뿐이었던 것이다. p.49
“사랑” 천천히 속으로 반복하던 그녀는 별안간 고리에 걸린 레이스를 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랑이란 말이 내게 너무 많은 걸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의미해요.”
안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 마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녀의 시선과 그녀의 손이 남긴 촉감은 그를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녀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손에 입맞춤했다. p.67~68
그는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꽃을 꺾어 놓고선 이제 와서 시든 꽃을 앞에 두고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 P.113
최근 들어 안나에 대한 열정이 식어 가던 브론스끼는 이번 일로 영원히 그녀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녀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불타올랐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고민했다. ‘이렇게 미쳐 가는구나. 이래서 권총 자살을 하는구나. 더 이상의 치욕은 없도록…….’ 그는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탁자 곁으로 가서 권총을 집어든 다음 왼쪽 가슴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p.130
“내 귀여운 아가!” 안나도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이 오고 있다는 유모의 귀띔을 듣고 안나는 아이에게 키스를 한 뒤 문을 나서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만나고 말았다. 그는 안나를 보자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안나는 세료좌에게 아빠를 가리켜 좋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얘기했지만 막상 남편을 보자 그에 대한 증오와 아들을 빼앗겼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베일을 내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아들에게 주려고 샀던 장난감은 건네주지도 못한 채 그대로 가져와야 했다. p.161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도와주소서!”
레빈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그저 입으로만 이 말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그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의혹들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것조차 지금 신에게 간구하는 그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그런 것들은 마치 먼지처럼 그의 영혼에서 사라져 버렸다. p.198
브론스끼는 역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신비롭고 매력적이며 사랑스러운 여인을 회상하려고 애썼다. 그는 그녀와 함께했던 최고의 순간들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그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그에겐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을 뿐더러 지워지지 않는 회한으로 가득 찬 위협을 자축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만이 기억될 뿐이었다. p.226~227
‘아니야, 말할 필요는 없다. 이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내게만 필요한 중요한 비밀이니까. 이 새로운 감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나를 변화시키지도 않았고 행복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뜻밖의 선물은 역시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지 아닌지 나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감정은 어느새 고뇌와 함께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을 것이다. …… 신성한 내 마음과 다른 사람, 심지어 아내의 마음 사이에도 일종의 벽이 생길지도 모른다. 또한 내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게 될지도 모르고, 무엇 때문에 기도를 하는지 이성적으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기도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은 이제 그 자체로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선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p.231~232
출판사 서평
가볍게 읽는 레프 똘스또이 3대 걸작선
안나 까레니나, 부활, 전쟁과 평화
도스또옙스끼, 체홉, 나보꼬프, 토마스 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안나 까레니나』는 안나와 까레닌, 안나와 브론스끼, 끼찌와 레빈, 스찌바와 돌리 등 여러 부부와 인물들의 교차된 삶의 단편을 통해 인간의 삶과 사회가 지닌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모습을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사랑받아 왔다. 특히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상과 다양한 인물들을 사실적이고도 유려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사랑, 결혼, 가족,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문제 및 시대정신에 대한 대문호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1878년 출간 이후 영화와 연극, 발레와 오페라, 뮤지컬 등 여러 예술 장르로 다시 만들어졌으며, 2007년에는 125인의 현대영미작가가 뽑은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되는 등 인류 지성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볍게 읽는 레프 똘스또이 3대 걸작선 시리즈는 뿌쉬낀하우스의 레프 똘스또이 전집 출간과 병행하여 똘스또이 작품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세 (편의) 장편 소설, 즉 『안나 까레니나』, 『부활』, 『전쟁과 평화』를 독자들이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분량 면에서는 가볍지만 원작에 충실한 핵심 내용만을 엮은 이 책으로 세계문학 고전 중의 고전인 똘스또이 작품 탐독을 시작해보자.
러시아교육문화센터 뿌쉬낀하우스에서는 총 18권의 레프 똘스또이 전집 출간과 병행하여 대문호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안나 까레니나』, 『부활』, 『전쟁과 평화』를 독자들이 보다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가볍게 읽는 레프 똘스또이 3대 걸작선’을 선보인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안나 까레니나는 당대의 사회상과 더불어 똘스또이 사상의 대전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1870년대 정신적 위기를 맞은 똘스또이는 이 작품 이후 이른바 ‘회심’을 결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레빈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똘스또이가 애초에 기획한 이 작품의 제목은 ‘두 결혼’, 혹은 ‘두 부부’였다. 즉 레빈을 중심으로 한 합법적인 가정과 안나를 중심으로 한 비합법적인 가정을 대립시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결국 ‘『안나 까레니나』는 두 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 셈인데, 저작 초기부터 안정된 가정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 여겼던 똘스또이에게 있어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그의 도덕적 가치관의 근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사랑, 결혼, 가정, 행복을 모두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세계관은 그의 전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이며, 이러한 인류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이 작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안나 까레니나』는 자칫 제목만을 염두에 둔다면 안나의 사랑과 그 사랑의 결말을 위주로 묘사한 소설로 인식하기 쉽지만 안나 못지않게 소설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레빈이다. 사랑을 위해서, 오직 그 사랑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윤리적 잣대도 개의치 않은 채 정열적인 사랑을 표출한 안나와, 엄격하면서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노동을 중시하는 레빈이 펼쳐 보이는 서로 다른 세상은 상반된 입장을 견지한 채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주된 동력이 되고 있다.
불륜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한 채 ‘비공식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안나와 달리 주위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레빈과 끼찌의 가정을 통해 똘스또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는 소설의 제사(epigraph)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에서 인용된 이 문장 속 ‘나’가 성경 원문 그대로 절대자인 신을 지칭한다면 벌은 신이 내리는 것으로써 작가 똘스또이가 신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신의 대리자로서 안나를 징벌한 것이 된다. 다분히 도덕적, 윤리적인 소설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에 이 문장 속 ‘나’를 주인공 안나 자신으로 국한시키며 이 소설을 한 주인공의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개인적인 연정의 시작과 끝을 담은 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소설 말미에서 볼 수 있듯이 안나는 자신이 사랑했던 브론스끼를 상대로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고 이것을 제사에 쓰인 ‘복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사랑과 복수를 그린 소설로 이해한다고 해서 이러한 시각을 단순히 폄훼할 수는 없다. 안나를 향해 자신있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이 부분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죄 많고 연약한 인간인 사실에 연유한다. 소설에서도 볼 수 있지만 비밀리에 불륜관계를 맺고 즐기던 당시의 주위 사람들과 달리 안나는 모든 사회적 질타를 감수하면서 브론스끼와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브론스끼와의 영원한 사랑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랑도 이내 식어갔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안나에게 남은 것은 절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뿐이었다. 비록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지언정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믿고 그 길로 나아갔고, 그 사랑이 끝내 이뤄지지 않자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여정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사람이 안나였다. 허위와 위선, 가식에 가려진 상류사회의 왜곡된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랑을 했던 인물이 안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할 때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똘스또이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도스또옙스끼가 이 소설을 가리켜 완벽한 예술작품이라고 평한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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