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프 똘스또이의 문학 작품과 일기, 서간, 기고문, 논집을 모두 아우르는 「레프 똘스또이 전집」의 보급판 「똘스또이 클래식」 시리즈의 첫 번째 책『크로이처 소나타』. 이 소설은 똘스또이의 후기 작품으로 ‘회심’ 이후 자연주의에 경도된 작가의 도덕적, 사상적 측면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삶을 위해 음주와 흡연 그리고 육식을 피하고 금욕 생활을 할 것을 주장했던 저자가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제’임을 설파한다.
저자(글) 레프 톨스토이
저자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는 1828년 모스끄바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거리에 있는 야스나야 뽈랴나에서 똘스또이 백작 가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었고, 이후 큰 고모와 후견인의 보살핌 속에 자라났다.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 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고 법학부로 전공을 옮겼으나 곧 중퇴하였다. 23세가 되던 1851년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시작하였고 이때 처녀작 「유년시절」을 쓰기 시작하여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6년에는 크림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경험을 토대로 쓴 「세바스또뽈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한편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였고,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후 「까자끄 인」(1863), 「전쟁과 평화」(1869), 「안나 까레니나」(1877) 등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대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사상의 전환을 맞이하여 「교의신학 비판」(1880), 「참회록」(1882)을 발표하는 등 기존의 순수예술에서 점차 벗어나 도덕적인 신념을 강조하고 자신만의 종교를 설파하였는데, 이로 인해 1901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을 부정함으로써 생긴 부인 소피야와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똘스또이는 끝내 노구의 몸을 이끌고 1910년 홀로 가출하였다가 아스따뽀보 기차역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출판사 서평
대문호 똘스또이가 사랑, 결혼, 여성 문제에 대해 세상에 던지는 메세지
레프 똘스또이의 문학 작품과 일기, 서간, 기고문, 논집을 모두 아우르는 「레프 똘스또이 전집」의 보급판 「똘스또이 클래식」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똘스또이의 후기 작품으로 ‘회심’ 이후 자연주의에 경도된 작가의 도덕적, 사상적 측면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주인공 뽀즈드느이셰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아내를 살해하게 되었는지를 기차에서 만난 화자에게 참회하며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사랑, 결혼, 여성 문제 등이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출간 당시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발간 금지를 당하기도 했던 작품이다. 이 책에는 똘스또이가 소설의 주제에 대해 직접 쓴 「크로이처 소나타 에필로그」와 러시아 시인이자 극작가인 옐레나 이사예바가 베토벤과 똘스또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비교한 연구 논문 「똘스또이가 들은 베토벤의 음악, 왜 ‘크로이처 소나타’인가?」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출판사 서평]
「크로이처 소나타」는 똘스또이의 후기 작품으로 ‘회심’ 이후 자연주의에 경도된 작가의 도덕적, 사상적 측면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삶을 위해 음주와 흡연 그리고 육식을 피하고 금욕 생활을 할 것을 주장했던 똘스또이는 이 작품을 통해 그 무엇보다도 절제하는 삶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똘스또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남성의 성적 절제와 금욕은 결혼 후 부인에 대해서도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여 당시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러한 주장의 일부는 다분히 현대에도 유효한 페미니즘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발간 금지를 당했고, 빗발치는 항의에 결국 똘스또이는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를 「크로이처 소나타 에필로그」에서 직접 설명하기에 이른다.
작품은 주인공 뽀즈드느이셰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아내를 살해하게 되었는지를 기차에서 만난 화자에게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은 아내가 바이올리니스트와 불륜 관계에 있다고 확신하고 살인을 저지르나 작품은 그 사실 여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묘사되는 의심과 질투, 오해로 점철된 주인공의 편집증적인 행동은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작품이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영감을 받아 쓰였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베토벤은 이 소나타를 브리짓타워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여자 문제로 우정에 금이 가자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로이처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크로이처는 이 작품을 혹평하며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연주하는 진정한 의미의 듀오 소나타로 불린다. 서로가 서로를 위협적으로 공격하는 듯한 1악장은 자주 연인들의 싸움에 비유된다는 점에서 똘스또이가 이 곡을 듣고, 살인으로 발전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렇듯 똘스또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후기에 접어든 대문호의 사상을 박진감 넘치면서도 간결한 필치로 펼쳐 보인 작품으로, 그리고 예술 장르 간의 상호 영향 관계(‘예술의 종합’)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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