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석학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다: 촘스키 편/김선명/ 뿌쉬낀하우스/ 1만6000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성이 없는 명백한 범죄 행위이지만 침공 원인을 제공하고 러시아가 도발하도록 한 건 미국입니다.”
세계적 석학이자 인권·평등·반전·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적극 내면서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기도 한 놈 촘스키(94)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기본적 시각이다. 책은 올해 2월24일 발발 이후 세계 정치·경제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말과 해법을 정리하고, 현재 국제정치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세계 석학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기획 시리즈 중 하나다. ‘촘스키 편’은 촘스키 교수가 지난 3월부터 다양한 매체 등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그가 생각하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말과 해법을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촘스키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을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독일 통일 시기에 동독이 소련군을 철수시키면서 맺었던 합의를 미국이 깬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1990년 2월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동쪽으로는 1인치도 가지 않겠다”고 세 번이나 말했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은 용납할 수 없다”는 고르바초프의 확언에 동의했다. 독일 통일 이후 소련이 우려하듯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인 나토가 소련의 안보 이익을 해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나토의 군사관할권이 동쪽으로 1인치도 확대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거듭 약속한 것이다. 이에 소련의 협조로 그해 10월 독일은 통일됐고 이듬해 12월21일 소련도 해체됐다.
하지만 이후 전개 과정에서 보듯 미국은 그 약속을 저버렸다. 촘스키 교수는 미국 정부가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을 줄줄이 나토에 가입시킨 데 이어, 러시아의 최후 완충지역인 우크라이나마저 독일과 프랑스 반대에도 나토로 편입시키려 열을 올린 게 이번 전쟁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미국이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유도해 10년에 걸쳐 소련에 결정타를 안긴 것처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리석은 범죄(전쟁)를 일으켜 미국에 최고의 선물을 안겼다고 주장한다. 느슨했던 유럽연합(EU)과 나토의 결속력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강화되고 유럽의 미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 푸틴이 유럽을 미국의 주머니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촘스키 교수는 미국은 더 이상 푸틴을 벼랑 끝에 몰아세워 인류 종말을 가져올 핵전쟁 위기로 치닫게 해선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해서라도 신속한 평화협상 등 전방위 외교적 해결에 힘쓰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220916511690?OutUrl=naver |